본문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광주아이키움

로그인

아이키움 전체메뉴

소통방

3년째 육아휴직 중인 다둥이 아빠

조동휘 [ehdgnl1003] 조회수 : 81

글자수:

3년째 육아휴직 중인 다둥이 아빠 첨부이미지 : image7.jpeg
1. 우리 부부의 가장 소중한 존재 첫째
  - 우리 부부는 결혼한지 1년이 지난 후에 본격적으로 임신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다행이도 임신은 잘 되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임신 후 6주만에 유산이 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아내가 병원에서 3교대로 근무를 하였는데 근무가 몸에 무리가 되었는지 아이가 잘 버티지 못하고 유산이 되었다
    아내는 그 후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인지 그렇게 밝던 사람이 공황장애라는 말도 안되는 병에 걸려버렸다
    최소한 1년 이상 약을 복용하고 치료를 해야되는데 아내는 임신을 위해 약을 3개월 만에 끊는 기적을 보여주었고
    아내의 노력이 가상해서 그런지 우리 부부에게 첫째가 임신이 되었다
    이러한 기쁨도 잠시 아내의 유산기가 심하여 임신 5주 때 부터 출산 때까지 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여파로 인하여 아내의 근육이 많이 소실되어 아빠인 내가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해야 했다
    나의 육아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첫째를 위해서 나는 경찰서 최초로 남자가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신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아이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작은 일에도 전전긍긍하며 육아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다사다난하게 1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나는 직장에 복귀를 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 당시 충남 서천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자택은 광주광역시에 위치를 하고 있었다
    첫째 아이를 내가 전담해서 키웠던 탔에 아이는 나를 엄마로 인식을 하여 나에게 조금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근하는데 있어서 너무 힘이 들었지만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광주에서 충남까지 왕복 320km가 넘는 거리를 매일 출퇴근 하는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직장에서는 육아시간을 이용하여 2시간 일찍 퇴근하여 집에 오면 저녁 7시 정도가 되었다
    1년 넘게 이러한 출퇴근을 반복하였다 주변 동료들이 나보고 어떻게 매일 그렇게 장거리를 출퇴근을 할 수 있냐며 놀랐다
    나는 솔직히 힘은 많이 들었지만 집에서 나를 반갑게 반겨주는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면 집으로 가는 퇴근 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2년 후 운좋게 전남 목포로 발령을 받아 출퇴근 거리가 절반 정도로 줄 수 있었다 절반으로 줄었지만 왕복 150km.. 그렇게 시간은 잘 지나갔다.
    그 후 우리는 둘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둘째를 낳으려고 한 큰 이유는 내가 외아들이 었기 때문에 집안의 대소사를 혼자 감당하여야 된다는 큰 무게와 이런 큰 일들이 일어날 때에 의논할 수 있는 형제가 없다는 것이
    지금 우리 아이에게 더 큰 힘듬이지 않을까 생각하여 둘째를 갖으려고 했다 둘째도 한번에 올리가 없었다
    4년 동안 노력하고 난임병원도 가며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았다
    22년 4월에 둘째 남자 아이가 우리에게 왔다
    둘째와 첫째의 나이차이는 4년...  육아를 다 잊어버려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첫째를 키워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첫째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키울 수 있었다
    나는 3개월만 육아휴직을 하고 직장에 다시 복귀를 하려고 했지만 아내의 경력단절이 벌써 6년차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큰 결심으로 내가 집에서 육아를 전담하고 아내가 직장을 다니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2년차 육아휴직이 시작되었다


2. 이건 꿈일거야! 내가 다둥이 아빠라니!
  -  우리 가정에는 두명의 아이가 있어서 더이상 아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첫째, 둘째를 너무 어렵게 갖기도 했고 난임이었기 때문에 셋째는 생각조차 한번도 하지 못한일이다
    더욱이 첫째가 딸, 둘째가 아들이라 주변에서 200점짜리 라며 다들 부러워 하였다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고 100일이 지난 후 직장에 출근을 하여 내가 주 양육자가 되어 첫째와 둘째를 양육을 하였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 둘을 잘 돌볼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하였지만 막상해보니 힘은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이 되어
    한달이 지난 후에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둘째를 아빠인 내가 육아휴직을 하여 키우고 있는터라 나는 복귀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둘째가 6개월쯤 아내가 아무말 없이 임신테스트기의 두줄을 보여 주었고 나와 아내는 그걸 보고 한동안 아무말을 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 순간 이건 꿈일꺼야라며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임신테스트기의 너무도 선명한 두줄을 보는 순간 나는 좌절하였다
    솔직히 첫째도 내가 육아휴직을 1년을 하여 키웠고 둘째도 육아휴직을 1년 넘게 하여 키워서 이제야 직장에 복귀도 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겠다 싶었는데 아내가 임신을 한 것이다
    아내의 임신을 확인한 후부터 셋째를 어떻게 키울까라는 생각에 극한의 스트레스에 휩싸였다
    더욱이 둘째와 셋째가 연년생이라서 나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고 뭘해도 신이나지 않고 우울해졌다

3. 나의 구세주 육아돌봄 선생님
  -  아내가 셋째 임신 8개월 때쯤 나에게 육아돌봄 서비스라는 것이 있는데 신청해서 해보면 좋을 거 같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속으로 그게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보자고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에 우리 가정에 첫 육아돌봄 선생님이 방문하였다
    인사는 반갑게 하였지만 나는 여전히 반신반의 하였다 하지만 육아돌봄 선생님이 둘째를 잘 돌보는 것을
    보고 속으로 감탄하였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시고 아이의 상태에 맞춰서 아이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선생님을 보면서
    육아돌봄 서비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의 육아는 힘든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전에는 너무 걱정을 하였던 셋째 육아도 선생님과 함께라면 잘 할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4. 나의 육아동반자 육아돌봄 선생님
   -  아내가 셋째를 출산하기 위해 산후조리원에 1주일 이상 입원해 있을 때에도 돌봄선생님은 나에게 진짜 큰 힘이 되었다
     솔직히 선생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둘째를 잘 돌보아 주고
     아이들과 산책을 나가거나 아파서 병원을 갈 때도 항상 동행하여 아이들을 잘 돌보아 주시는 돌봄선생님이 있어 든든하고 행복했다
     이제 돌봄선생님은 우리 가정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앞으로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돌봄선생님과 함께라면 다 이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함께라서 더욱 행복한 육아
  - 우리 사회는 여자가 육아를 전담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맞벌이가 많은 요즘에도 이러한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래서 아내들이 많이 힘든 게 사실이다 남편과 똑같이 일을 하는데 집에서 아이까지 독박으로 봐야한다면 이건 너무 큰 고통이다
   남편들이 육아에 많이 참여를 해줘야 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게 못하다
   나도 이러한 남편들 중 한명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서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고 육아단축시간을 쓰게되었고
   이로 인해 아이들을 돌봄에 따라 아이키우는 것이 많이 힘들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었다 100%는 아니더라도 70% 이상은 공감할 수 있을 거 같다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내와 함께 육아를 시작하게 되어 힘은 들었지만 힘듬보다 요즘은 행복이 더 많아졌다
   이렇게 말하면 말도 안된다고 하겠지만 아이가 한명에서 두명 두명에서 세명이 되어 갈 수록 힘은 들지만 그 아이들이 주는 넘치는 행복과 기쁨은 더욱 커졌다
   3달전에 홀어머니를 보내야 되는 큰 아픔을 격었다 외아들이었고 셋째가 태어난지 50일도 안된 시기였다
   상주 자리에서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중에도 출산한지 50일도 안된 몸으로 아내 혼자 어떻게 세명의 아이를 돌볼수 있을까 어떻게 세명의 아이를 재울수 있을까 먹일수 있을까 온갖 걱정이 많았었다
   그때에도 돌봄 선생님과 어머니 아버지처럼 늘 옆에서 힘이 많이 되어주신 장인 장모님께서 삼일동안 아내 옆을 지키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힘이 되어주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외동 아들이라서 힘듬이 정말 큰것 같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혼자 다 준비를 하고 혼자 결정을 하며 함께 해줄수 있는 형제라 없기에 많이 벅찰때가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세명이라서 그래도 슬픔 기쁨을 나누면서 살아가겠다 생각하니 세명을 출산한것이 뿌듯하고 가장 잘한 일이 아닌가 싶다
   아이 한명을 키우려면 온마을이 도와야 한다는 말이있다 그만큼 손이 많이 필요하고 도움이 절실하다
   함께 돌봄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부부에게는 정말 큰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더 잘 양육할수 있도록 돌봄시스템이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다
   그리고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육아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시스템도 너무 좋고 감사하다

댓글 0

소통방
다음글 육아체험수기 육아라는 긴 여정에서 함께 손잡아 동행해주는 돌봄육아를 경험하면서.. 백유진 20231118230732
이전글 육아체험수기 외국인 엄마를 감동시킨 나의 육아 멘토 광주 아이키움 고마워! 김정호 20231118221829

기본정보설정

삭제
삭제

최근 이용한 서비스

관심분야관심분야 AI 맞춤정보 서비스를 이용하세요

주간 이슈 키워드